- [PEOPLE]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빅데이터 기업이자 미국에서 가장 베일에 싸인 빅테크 기업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의 설립자 알렉스 카프(Alex Karp, 56) 최고경영자(CEO)의 철학적 사상을 파헤쳐봤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쓴 마르틴 발저를 주제로 한 카프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철학적 사상을 엿볼 수 있다.
페터 노이만 Peter Neumann <차이트> 기자
▲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가 2023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카프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고 대중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다. REUTERS |
199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정신분석학자 마르가레테 미처리히의 80살 생일 파티 손님 중에는 프랑크푸르트대학의 박사과정생이던 젊은 알렉스 카프도 있었다. 생일 파티에서 찍은 한 단체 사진에 검은 터틀넥 점퍼와 밝은 재킷 차림의 카프가 있다. 2024년 6월 독일에서 상영된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의 최고경영자(CEO)에 관한 다큐멘터리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팔란티어와 알렉스 카프의 세계>(Watching you–The World of Palantir and Alex Karp)에 나온 장면이다. 수줍음을 타는 듯한 사진 속의 카프는 머나먼 존재처럼 보인다.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빅데이터 기업가 중 한 명인 카프는 어떻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적 인사들과 교류하게 됐을까? 그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설립한 벤처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빅데이터 조사·분석 전문업체를 설립했고, 바스프(BASF)와 스프링거(Springer) 출판그룹의 감독이사회 이사이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관 및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 미국의 최대 첩보기업 팔란티어가 뉴욕증시에 상장된 2020년 9월30일 뉴욕증권거래소 건물 정면에 펼침막이 걸려 있다. 팔란티어가 어디서 데이터를 입수하며, 입수한 데이터로 무엇을 하는지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REUTERS |
베일에 가려진 카프
그런 그가 1967년 전후에 나치의 과거사에 대한 독일의 집단적 외면을 다룬 저서 <애도 능력의 부재>를 남편 알렉산더 미처리히와 공동 집필한 마르가레테 미처리히와 어떻게 교류하게 됐을까? 그리고 자신을 여전히 좌파 및 ‘신마르크스주의자’로 자칭하는 카프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마르가레테 미처리히의 생일 파티로부터 불과 6년 후인 2003년 감시국가를 표방한 회사를 어떻게 설립하게 됐으며, 또 이 회사는 어떻게 데이터 자본주의의 최전방에 서게 됐을까?
각국 정부 및 정보기관과 협력하는 미국 최대 첩보기업 팔란티어는 첩보업계 및 주식시장의 스타다.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테러, 돈세탁, 밀수, 마약 거래 등 범죄를 감지하는 ‘팔란티어 고담’(Palantir Gotham) 서비스는 2011년 미국이 9·11 테러 주범 오사마 빈라덴의 파키스탄 은신처를 확인해 사살한 작전에 활용됐다. 또한 팔란티어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팔란티어가 대체 어디서 데이터를 입수하며, 입수한 데이터로 무엇을 하는지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낸시 페저 독일 내무부 장관은 2023년에야 독일에서 팔란티어 소프트웨어 사용을 금지했다.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는 개인정보 보호 원칙에 어긋나고 따라서 보안상 안전하지 않다고 팔란티어 반대파들은 비판한다.
팔란티어는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카프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고 대중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다. 날선 질문이 쏟아져도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그렇다면 카프의 원동력과 사업 동기는 무엇일까? 이를 둘러싸고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카프의 학문적 배경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 적은 거의 없었다. 역시 관심에서는 비켜나 있지만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카프가 작성한 박사논문 ‘생활 환경에서의 폭력성’(Aggression in der Lebenswelt)은 그의 철학적 사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의 빅데이터 철학은 프랑크푸르트대학 박사과정생 시절과 독일의 과거사 청산 사상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프랑크푸르트 시절을 한 번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오른쪽)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2023년 9월 미국 민주당 상원이 주최한 초당적 ‘인공지능 인사이트 포럼’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REUTERS |
마르틴 발저 연구
카프는 독일인의 과거사에 대한 억압된 죄책감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유대인 아버지와 아프리카계 어머니를 둔 독일 핏줄의 카프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했다. 실리콘밸리의 산실로 통하는 스탠퍼드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독일 출신 배경 때문인지 헤겔, 마르크스, 비판이론 등 독일 사상과 프랑크푸르트학파에 관심이 많았다. 1990년대 중반 그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세미나를 집중적으로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프는 하버마스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독일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연구소’(Sigmund Freud Institut)에서 사회심리학자 카롤라 브레데와 일했다. 카프는 독일어를 금세 배우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독일에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대학생처럼 연구문헌도 거의 참고하지 않고 논문을 서둘러 끝냈다. 그래도 그의 박사논문은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인 ‘우등’을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카프는 스탠퍼드대학 동문 피터 틸과 함께 팔란티어를 설립했다. 하지만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상은 그의 내면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다.
카프가 2002년 집필한 박사논문은 현대사회에서 폭력성이 어떻게 극단으로 치달았는지를 다룬다. 그의 박사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과거사에 대한 독일의 집단적 침묵이 아닌, 그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직접 겪은 일화를 다뤘다. 구체적으로는 마르틴 발저(독일의 소설가이자 극작가)가 1998년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파울 교회(Paulskirche)에서 한 연설(독일 도서무역협회 평화상 수락 연설)을 비롯해, 마르틴 발저가 그의 박사논문 주제였다.
발저는 파울 교회 연설에서 과거사에 대한 독일 사회의 죄책감은 이제 충분하며, 양심과 의지를 무조건적으로 과거사 기억에 복종시키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우슈비츠가 독일인에게 도덕적 몽둥이로 남용됐다”고 주장했다. 카프는 논문에서 “홀로코스트와 무자비한 과거사 기억의 신봉자들로부터 쫓기고 있다는 발저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지만, 그의 파울 교회 연설의 문화적 중요성은 엄청나다”고 평가했다.
좌파 성향의 이데올로기 비평가로서 박사과정생 카프가 발저의 파울 교회 연설에 비판적 반응을 보였을 것으로 대개는 짐작할 것이다. 그런데 카프는 의외로 중립적 태도를 취했다. 그는 발저의 연설을 도덕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그의 연설이 내포한 폭력성 알고리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 미국의 이민자 지원 활동가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9년 9월, 팔란티어가 자사 소프트웨어로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이민자 단속을 도왔다며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는 개인정보 보호 원칙에 어긋나고 따라서 보안상 안전하지 않다고 팔란티어 반대파들은 비판한다. REUTERS |
추악한 내면도 들여다봐야
발저는 프랑크푸르트 파울 교회 연설에서 자신의 양심을 언급하며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이그나츠 부비스 유대인 중앙평의회 당시 의장은 발저의 연설에 기립 박수를 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이후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독일의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독일인은 억눌린 욕망을 폭력적으로 분출했다고 카프는 보았다. 폭력은 심지어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통합 수단으로 활용되는데, 자신의 그룹에 특정인은 포함하고 이외의 사람은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바로 발저가 이에 대한 최고의 사례다. “발저의 파울 교회 연설은 이해하기 쉬운 민주적 언어인 동시에, 이 연설 행사가 갖는 전통의 힘을 빌려 특정 집단 혹은 개인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카프에게 발저의 사례는 적절한 타이밍만을 기다리던 여과되지 않은 폭력성의 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던 것일까? 카프는 독일의 과거사 청산에 관한 자신의 박사논문과 자신의 빅데이터 업체 필란티어의 연관성을 이후에 언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독일의 과거사 청산 논의를 계기로 인간의 비이성적 욕구를 통제하려면 인간의 이성적인 면 이외에도 내밀하고 추악한 내면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는 있다. 인간 내면의 폭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잠복해 있으며 그냥 잠자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독일 과거사 청산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발저는 자신의 폭력성에 굴복했다고 가슴 깊은 곳에서 양심 고백을 했다. 발저의 고백에 비춰보면 인간은 내면의 폭력성과 말 그대로 싸워야만 어두운 내면의 영혼을 감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중의 시선에서 비켜서서 비밀리에 수집 가능한 인터넷의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이런 비밀을 파헤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까? 이성적 서구 세계의 상징인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9·11 테러를 계기로 카프는 정치, 군사, 정보기관, 이후 소셜미디어 등 갖가지 분야의 데이터를 인공지능(AI)에 제공해 충분히 훈련시켜야 한다고 분명하게 인지했다.
인간 세계의 숨겨진 내부, 이 깊고 검은 동굴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선제적으로 제대로 연구하는 것이 카프에게 중요해졌다. 도덕이나 이데올로기 관점에서의 허황된 비판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좌파적 정체성 정치로 폭력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폭력에 대한 현실적 시각이 여전히 낫다고 카프는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정보가 독재자나 다른 정치적 선동가들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으므로, 진보 좌파들의 개인정보 악용 경고 및 비판은 폭력을 오히려 더욱 숨길 뿐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이제 카프에게는 향후 테러 방지를 위해 폭력의 전문용어를 배우고 숙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유지하려는 사회 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기 위해선, 폭력 전문용어는 비밀리에 익히고 밖으로는 낙관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꼭 필요했다. 카프는 프랑크푸르트대학에 제출한 130여 쪽 분량의 박사논문에 서구의 리버럴(자유주의적) 프로젝트는 달라져야 한다고 적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
이제 중요한 것은 고전적 계몽주의나 자유와 평등의 이상이 아니라, 적을 파악하고 소수가 첩보 활동을 하는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테러에 맞서고 내부적으로는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좌파의 선심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카프는 박사논문에 썼다. 정보기관들과 거대 테크 기업 간의 협력 강화를 통해 필요한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앞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신봉했던 카프는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의 위험성, 즉 끔찍한 파괴력을 단 한 번도 숨기지 않았다. 카프는 자신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팔란티어 제품은 인명 살상에 때때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자신의 회사가 만든 소프트웨어는 “모든 종류의 표적”을 겨냥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을 벌이는 세상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자신이 더 빨라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전지전능한 신의 역할을 하고, 대규모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 Die Zeit 2024년 제28호
Die neue Aufklärung
번역 김태영 위원
페터 노이만 economyins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