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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금 무기로 선거 좌지우지

기사승인 [173호]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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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약발 먹히는 트럼프의 친기업 정책- ③ 억만장자들의 금권정치

 
미국 대선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슈퍼리치들의 정치후원금이다. 슈퍼리치들의 정치후원금이 때로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대선 후보들에게 흘러들어가기도 한다.

하이케 부흐터 Heike Buchter <차이트> 기자
 

   
▲ 2024년 7월21일 오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재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선 캠페인 명칭이 ‘해리스를 위한 대통령’으로 변경되자마자 민주당에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정치후원금이 대선 후보의 당락을 결정한다. REUTERS

2024년 7월21일 일요일 오후, 갑자기 수백만달러의 대선 후원금이 미국 민주당으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선 캠페인 명칭이 ‘해리스를 위한 대통령’으로 변경되자마자 민주당에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당 대선 캠페인 팀은 7월22일 월요일 저녁까지 무려 1억달러 이상을 모금했다고 발표했다. 직전 몇 주간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지부진했던 후원금 규모를 생각한다면 상전벽해의 변화나 다름없다.
미국에서는 정치후원금이 대선 후보의 당락을 결정한다. 현직 바이든 대통령은 6월 말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와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노쇠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가 돼서는 절대 안 되는 인물로 낙인찍혔다. 대선 토론 후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0%만이 바이든 대통령의 정신 상태가 ‘좋다’ 또는 ‘아주 좋다’고 응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불출마를 결정하게 된 직접적 요인도 일단 대선 자금이었다. 민주당의 주요 정치 후원자들이 앞다퉈 후원을 보류하면서, 바이든 대선 후보 조직이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넷플릭스 설립자이자 정치후원금의 큰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최근 TV 대선 토론 직후 “강력한 정치 후계자를 위해” 바이든은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 넷플릭스 설립자이자 정치 후원금의 큰손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최근 TV 대선 토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강력한 정치 후계자를 위해” 바이든은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압박했다. REUTERS

바이든 불출마 압박
월트 디즈니의 상속자인 애비게일 디즈니도 “바이든이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패배할 것”이라고 시엔비시(CNBC) 방송에 나와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세계 최대 소매업체 월마트 상속자 크리스티 월튼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배턴을 넘기라”고 호소하는 서신을 보냈고, 이 서신에는 민주당의 정치 후원자 167명이 공동 서명했다.
돈을 가진 사람이 누가 권력을 가질지를 결정한다. 미국에서 금권정치는 민주주의에 어느 정도의 균열을 내고 있을까? 차기 미국 대통령을 돈으로 살 수 있는가?
11월5일 대선일까지 미국에서는 양대 정당의 정치 후원자들 간에 팽팽한 대결이 이뤄질 것이다. 크리스티 월튼, 애비게일 디즈니, 리드 헤이스팅스 외에도 에릭 슈미트 구글 전 대표, 뉴욕 미디어 기업가 마이클 블룸버그 및 조지 소로스 등이 민주당을 후원하고 있다.
반면 대표적인 공화당 후원자로는 금융대기업 블랙스톤의 주요 투자자인 스티븐 슈워츠먼, 카지노 억만장자 셸던 애덜슨의 미망인 미리엄 애덜슨, 기업 해체로 큰돈을 버는 투자회사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폴 싱어 등이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대표적인 후원자는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일론 머스크다. 7월 중순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에게 매달 4500만달러(약 616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한 머스크에게 공개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후 머스크는 트럼프에 대한 후원 의지 확인을 거부했다.
슈퍼리치들의 막대한 후원금 없이는 미국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 정치자금 지출 규모를 집계해 제공하는 워싱턴의 비영리단체 ‘오픈시크릿’(OpenSecrets)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두 진영은 선거비로 140억달러(약 19조원) 이상을 지출했다. 140억달러에는 상하원 선거 후보들의 선거비 지출액도 포함돼 있다.
각종 예측에 따르면 2024년 대선전에서는 정치 후원자들이 후원금 규모를 놓고 경쟁을 벌이면서 선거비용은 4년 전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버지니아공대의 케이스 마이어스 홍보·커뮤니케이션 교수는 “4년 전과 비교해 새로운 점은 정치 후원자들이 아주 공개적인 행보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미국 기업가들은 차기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양쪽 진영에 모두 후원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제 억만장자들이 한쪽 정당을 명확하게 지지하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
 

   
▲ 2024년 7월28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트럼프는 암호화폐 거래 규제 강화를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REUTERS

머스크의 노골적 트럼프 지지
7월13일 트럼프가 피격당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머스크는 친트럼프 메시지 100개를 더 올렸다. 그의 뒤를 이어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수십억달러 규모의 벤처캐피털 펀드를 통해 트위터와 스카이프(Skype)에 재정적 지원을 제공한 인터넷 개척자 마크 앤드리슨과 벤 호로위츠 등 테크 공룡 총수들도 앞다퉈 트럼프에게 우호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반면 보스턴의 세스 클라먼 헤지펀드 매니저는 트럼프 때문에 공화당 후원을 중단하고 다른 진영에 후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2020년 대선전을 보면 후보들이 후원금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오픈시크릿 자료를 보면 양대 정당의 대선 캠프는 공식적으로 지출한 비용의 56%를 주로 지역의 TV·라디오 광고에 사용했다. 2024년 대선전에서도 두 후보는 홍보 영상 제작에 대대적인 물량을 퍼붓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 전에 제작한 홍보 영상을 보면 자신에게 감사해하는 노동자들 앞에서 경제 성과를 열거하는 장면이 나온다.
전통적인 라디오와 TV의 뒤를 이어 페이스북, 틱톡, 구글 등 디지털 플랫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후보들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선거 홍보는 물론이고 후원금도 모금한다.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선거비용은 여론조사, 선거용 전단, 홍보 배너 및 포스터 등에 사용된다. 또한 컨설턴트, 직원, 사무실 임대, 타운홀 미팅 장소 임대료, 항공, 버스, 렌터카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이제 미국의 선거 캠페인은 자금 면에서 중견기업과 규모가 비슷하다.
서신, 문자메시지 또는 온라인 광고 배너(“카멀라 해리스에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를 보고 소액 후원을 선뜻 결정하는 개미 후원자들이 선거비용 조달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바이든은 민주당이 소액 후원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당인 반면, 공화당은 거액 후원자들의 정당이라는 점을 줄곧 강조해왔다.
하지만 양대 정당의 후원자들을 이렇게 단순화해서 이분화하기는 어렵다.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이 모금한 후원금의 40%는 소액 후원자들로부터 나온 반면, 트럼프의 경우는 50%에 달했다. 그리고 현재 대선 캠페인에서 바이든은 개인적으로 큰손 후원자들로부터 수백만달러를 모금했다. 바이든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꿀벌 대소동, 마다가스카) 공동 설립자인 할리우드 프로듀서 제프리 카젠버그 등의 후원자들과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했다. 카젠버그는 바이든에게 후원금 기부뿐만 아니라, 대선 캠페인의 공동의장을 맡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대선 후원금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08년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는 정당 자금 개혁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오바마 취임 2년차 때인 2010년, 대법원은 정당 기부금 상한선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이 현재 미국 대선에서 지대한 역할을 맡게 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공화당) 또는 ‘미래 전진’(민주당)과 같은 슈퍼팩에 기업, 노동조합 혹은 억만장자는 아무런 제한 없이 기부할 수 있다.

괴물이 된 슈퍼팩
이런 캠페인 슈퍼팩 조직들은 200만~300만달러를 모금할 때도 있으며, 이렇게 모은 후원금을 자체 선거운동, TV 광고 및 도로 펼침막 제작에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는 후보의 공식 선거운동 조직의 가용 자금으로 봐야 한다. 후원자는 원하면 익명으로 후원할 수 있다. 그래서 후원자들은 유령회사나 기타 불투명한 수단을 통해 후보에게 후원금을 전달한다.
검은 돈(Dark money)은 이런 유형의 선거 후원금을 일컫는 말이다. 2020년 대선 캠페인에서 검은 돈은 몇 년 전과 대비해 무려 3배나 증가한 6억6천만달러에 달했다. 현재 대선 캠페인에서도 검은 돈 후원금이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차기 대통령은 누가 자신에게 후원했는지를 어떻게든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후원자의 목표는 명확하다.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사는 것이다. 후원자들은 비즈니스 또는 이념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혹은 두 가지 모두를 추구하기도 한다.
머스크가 대표적 사례다. 억만장자인 그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정치적 성향이 달라졌다. 2018년 당시 트럼프 정부가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에서 탈퇴하자 테슬라 최고경영자 머스크는 이에 항의하며 경제 자문직에서 사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바이든 대통령을 “모양만 사람인 젖은 양말 꼭두각시”에 비유하며 점점 강경한 비난 태도를 취했다.
머스크의 정치적 성향이 달라진 대표적 배경은 미국 최대 자동차산업노조인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이 테슬라 직원들을 노조원으로 조직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특히 친노동 성향의 바이든은 2023년 직접 손에 확성기를 들고 전미자동차노조원의 파업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당시 노조가 없던 테슬라에 전기차 보조금 프로그램에서 제외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바이든이 테크 기업들의 슈퍼리치 투자자들에게 큰 타격을 입힐 신규 부유세 도입을 계획하자, 머스크와 테크 업계의 수많은 기업이 분노했다. 또한 머스크는 인공지능(AI) 개발 규제를 강화하려는 바이든의 계획에도 반발했다.
머스크는 바이든의 임기 중에 반독점 당국이 아마존, 애플, 메타,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한 것도 너무 가혹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바이든의 암호화폐 거래 규제 강화 계획에도 불만이었는데, 특히 독립적 암호화폐가 미국 테크 업계에서는 국가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의 상징물로 통했기 때문이다.

지지층과 멀어진 대선 공약
반면 트럼프는 암호화폐 거래 규제 강화를 보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7월28일 일요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 참석했던 트럼프는 산업계 전반(“세금 감면하겠다!”)이나 석유업계(“시추를 계속해라!”)에도 모두 호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최근 각 업계를 돌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슈퍼리치들은 더욱 잘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러한 대선 공약은 각 정당 핵심 지지층의 민심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다. 스탠퍼드대학과 버클리대학 연구원들은 4년 전 큰손 후원자들이 원하는 것을 조사한 한 연구에서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은 핵심 유권자층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금권정치가 승리한다는 말이다.

ⓒ Die Zeit 2024년 제32호
Die Macht der Milliardäre
번역 김태영 위원

 

하이케 부흐터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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