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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규제완화 기대에 지지 늘어

기사승인 [173호]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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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약발 먹히는 트럼프의 친기업 정책- ① 줄 서는 CEO들

 

   
▲ REUTERS

재계 장악한 트럼프
2021년 1월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선동으로 폭도들이 워싱턴의 의사당을 습격했다. 비즈니스 엘리트들은 ‘민주주의의 적’이라며 트럼프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4년도 채 안 돼 트럼프는 재계를 장악했다. 최고경영자들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에게 후원금을 내며 줄을 선다. 감세와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재정적자가 큰 상황에서 감세와 무역 전쟁, 이민자 대량 추방이 결합하면 인플레이션이라는 독극물이 제조될 수 있다고 보수적인 경제전문가들조차 우려한다. _편집자


팀 바르츠 Tim Bartz 이네스 최틀 Ines Zöttl <슈피겔> 기자
 

   
▲ 2024년 11월5일 치러질 미국 대선을 몇 개월 앞둔 시점에 도널드 트럼프는 당내 경쟁자를 모두 물리치고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미국 서부 몬태나주 보즈먼에서 트럼프 후보가 8월9일 선거유세를 벌이고 있다. REUTERS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비즈니스 엘리트들 사이에서 이미 끝난 인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비즈니스 최고경영자(CEO)와 억만장자들이 이 전직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들은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자신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바를 이뤄주기 바란다. 다른 한편에선 그의 복수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스티븐 슈워츠먼은 고객을 대신해 1조유로를 투자한, 세계 최대 금융 투자회사 블랙스톤(Blackstone)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다. 그가 정치에 관여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2021년 1월6일, 그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전직 대통령 트럼프의 선동으로 폭도들이 워싱턴의 의사당을 습격해 부통령을 공격했을 때였다.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를 공격한 바로 그날 저녁, 슈워츠먼은 “오늘 대통령의 발언을 시작으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오늘 일은 우리가 미국인으로서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모욕한 것”이라며 격분했다.
하지만 슈워츠먼이 그때의 분노를 계속 지니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지금 그는 ‘민주주의의 적’인 사람이 권력에 복귀하는 것을 돕고 있다. 2024년 5월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 투표할 것이며,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도록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그는 기부금도 낼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의사당을 습격한 사건으로 트럼프한테 등을 돌렸던 미국의 대다수 최상위 경영인, 투자자, 억만장자들은 이제 블랙스톤의 대표 슈워츠먼처럼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은 공화당 소속의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으로 복귀할 상황에 이미 대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후원하고 있다.
 

   
▲ 한때 트럼프의 반대 진영에 섰던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최고경영자는 이제 트럼프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REUTERS

기업인들에게 던진 미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몇 주 동안 수많은 비즈니스 리더들을 만나 화해하고 수백만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 은행 상속자인 팀 멜런(81)이 트럼프에게 5천만달러(약 681억원)를 기부한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이는 현재 미국 선거 캠페인에서 단일 기부금으로는 가장 많은 액수다. 헤지펀드 스타 매니저인 존 폴슨은 트럼프의 재무장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도 정부 고문직을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2024년 11월5일 치러질 대선을 몇 개월 앞둔 시점, 트럼프는 당내 경쟁자를 모두 물리쳤다. 그의 둘째 며느리 라라는 ‘위대한 원로당’(Grand Old Party, GOP)이라는 비웃음을 받기도 하는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이 당은 이제 트럼프 추종자들이 좌지우지한다. 7월 중순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미국 경제계 엘리트들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벌어졌던 혼란을 기억에서 벌써 지워버린 듯하다. 그 이유 중 하나를 꼽자면, 트럼프 후보가 모든 기업가에게 항상 잘 통하는 미끼, 즉 세금 인하와 규제 완화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첫 임기 동안 세계적으로 미국의 명성을 더럽힌 것을 기업의 리더들은 깡그리 잊은 것처럼 보인다. 즉 의사당 습격, 철창에 갇힌 이주 아동,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한 찬사, 혼란스럽고 체계적이지 못한 팬데믹 대응, 국가 부채의 폭발, 미국이 기록적인 적자로 대가를 치른 중국 및 유럽과의 무역 분쟁 등등 말이다. 기업 리더들은 ‘무슨 문제가 있었나?’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사실 기업인들이 현직 대통령 조 바이든과 민주당에 만족해야 할 이유는 많다. 경제, 주식시장, 노동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고, 시간당 명목임금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으며 미국 기업(금융 부문 제외)의 수익성은 1960년대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인플레이션은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지만 2022년 이후 3분의 2 정도가 감소했다. 영국의 리버럴한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현재 상황을 “미국은 세계경제의 문제에 면역된 것 같다”는 말로 요약했다.
경제 수치로만 보면 텔레비전 토론회 전까지 바이든은 당연히 재선돼야 했다. 하지만 높은 물가는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인플레이션은 세계적 현상이지만 미국에서 특히 심각하며 대다수 미국인은 이렇게 된 것이 바이든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트럼프가 기업과 화해했다는 사실은 공화당인 그가 상대편인 민주당과 싸워 이길 가능성을 높여준다.
2024년 6월 중순, 트럼프는 미국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이 주최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이 단체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워싱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 단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들은 매번 대선 전에 이곳에서 경제정책 아이디어를 공표한다. 6월 중순 이 자리에서는 2주 전 뉴욕의 배심원단으로부터 트럼프가 유죄 평결을 받은 것이 별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트럼프는 전직 포르노 배우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대가로 선거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80여 명의 기업 대표들이 트럼프를 만나거나 그의 말을 들으러 왔다. 제인 프레이저(시티그룹), 브라이언 모이니핸(뱅크 오브 아메리카), 제이미 다이먼(제이피모건체이스) 등 월스트리트 보스들이 몰려들었다. 제록스 CEO 스티븐 밴드로작, 패션 브랜드 갭의 리처드 딕슨, 애플의 대표 팀 쿡 등도 얼굴을 내밀었다. 불참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슈워츠먼처럼 이미 트럼프에게 투표할 의사가 있음을 공개적으로 분명히 밝힌 기업인들이었다.
 

   
▲ 2021년 1월6일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동으로 폭도들이 워싱턴의 의사당을 습격했지만, 이제 재계 지도자들은 그 일이 없었던 듯 트럼프를 지지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기업과 화해한 트럼프
미국 워싱턴의 포토맥강이 흐르는 회의장 밖에는 트럼프의 유죄 판결과 의사당 폭거를 상기시키는 광고 차량이 있었다. 물론 민주당이 비용을 지불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에서는 트럼프의 경제정책 메시지가 박수를 받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트럼프를 향한 자신의 견해가 달라졌다고 이야기하는 기업인은 거의 없다. 하지만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대다수 기업인이 트럼프에게 호감을 느끼는 이유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이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드럽게 처신하는 수완을 지녔다며 ‘내면의 자질’을 칭찬한다. 트럼프에게 그런 면모가 있었는지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는데도 말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어떤 기업인은 트럼프와 만난 뒤, “확고한 신념을 지닌 사람으로 거의 사업가처럼 보였다”고 평했다. 반면에 다른 기업인은 “우리가 100번도 넘게 들어왔던 트럼프와 똑같았다. 조금 더 신중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유대인인 블랙스톤의 CEO 슈워츠먼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했다. 자신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는 미국 내 반유대주의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에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치 트럼프가 독일 홀로코스트 역사를 부인하는 극우주의자 닉 푸엔테스, 그리고 반유대주의자 카니예 웨스트를 자신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대저택에서 영접한 일이 없었다고 말하는 듯한 발언이다. 더 나아가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있었던 극우 파시스트들의 횃불 시위를 묵인했던 트럼프의 반응을 별일 아닌 것으로 넘어가는 듯한 발언이다. 버지니아에서 벌어진 이 섬뜩한 장면은 당시 극도로 실용적인 미국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조차 경악하게 만들었다. 트럼프에게 경제 문제를 자문하던 위원회의 일부 위원은 사임하기도 했다.
CEO들은 무엇보다도 트럼프의 대대적인 세제 개혁을 기억한다. 임기 초 트럼프는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고, 절세 혜택 가능성을 아주 관대하게 보장해줬으며, 유사시 도망갈 구멍들도 열어놓았다. 당시 미국 경제는 이미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경기 부양책을 도입할 필요가 없음에도 취한 조치들이었다.
주요 수혜자는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유권자이자 공화당의 주요 기부자인 부유층과 거부들이었다. 기업은 새로이 주어진 자유를 이용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주가를 끌어올렸다. 미국의 노후대책은 주식 저축 플랜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이는 일반 미국인에게도 간접적으로 도움이 됐다. 그러나 트럼프가 예상했던 국민경제에 대한 투자 붐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그가 말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감세”로 인해 향후 10년간 국가 재정은 1조5천억달러에서 2조달러 정도의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팁 세금도 없애겠다”
트럼프는 이제 비슷한 선거 공약을 다시 내세우고 있다. 그는 법인세율을 20%로 더 낮추고 무엇보다도 이를 영구화하려 한다. 이는 전적으로 미국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단체가 바라는 바와 일치한다. 이 단체는 낮은 세율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수백만달러 상당의 광고 캠페인을 시작하려 한다. 한 금융 투자자는 “트럼프가 가진 가치관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가 승리하면 우리는 더 부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소득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려 한 바이든이 경영인들로부터 점수를 따기는 어려웠다.
트럼프는 소득이 적은 유권자한테는 팁에 부과하는 세금을 폐지해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공약으로 유혹한다. 영리한 선거 캠페인 전략이다. 미국의 서비스 업계 종사자들은 임금이 적어 팁에 의존하는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국 네바다주에서 이 계획을 처음 발표했다. 서부의 네바다주는 도박으로 유명한 대도시, 라스베이거스에 크게 경제를 의존한다. 수천 명의 사람이 저임금 카지노 직종에 종사하고 있어 팁 없이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게다가 네바다주는 선거 때 결정적인 ‘스윙 스테이트’(경합주)다. 2020년 대선 당시 상대 후보인 바이든은 이곳에서 간신히 승리했다.
물론 트럼프의 전략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과 같이 부채가 많은 국가가 자발적으로 상당한 세수를 포기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보고서가 있다. 초당파적 비정부단체인 ‘책임 있는 연방 예산위원회’(CRFB, Committee for a Responsible Federal Budget)가 계산해낸 것이다. 팁에 과세하지 않으면 연방 예산은 10년간 최대 2500억달러의 손실을 보게 되며, 팁이 비과세로 되고 동시에 기업들이 임금을 줄이면 세수는 이보다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발표한 대로, 그가 지난 재임 기간 동안 실시한 세제 개혁, 이른바 감세 및 일자리 법안을 전면 연장할 경우 재정 문제는 더욱 커질 것이다. 2033년까지 예산은 3조3천억달러가 부족하게 되고, 연간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8%를 상회할 것이며, 국가 부채는 10%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가 부채는 이미 명목 GDP의 약 123%에 해당하는 약 35조달러에 이른다. 순전히 산술적으로만 보면 콩고공화국보다 높은 비율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지적한다.

ⓒ Der Spiegel 2024년 제27호
Verfemter a. D.
번역 최현덕 위원

 

팀 바르츠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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