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ECIAL REPORT] 카멀라 해리스 경제정책- ② 기후정책은 친환경적
막강한 석유·가스업계 로비가 미국 정치권을 좌지우지해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이런 상황을 대선 운동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가 고도의 능숙함을 발휘한다면 기후정책에 새로이 힘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이케 부흐터 Heike Buchter 라우라 크비어트니아 Laura Cwiertnia 우베 잔 호이저 Uwe Jean Heuser 〈차이트〉 기자
▲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 린 ‘2023 세계기후회의’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는 미국 부통령으로서 2030년까지 미국의 에너지 효율을 두 배로 늘리고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늘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2023년 12월2일 두바이에서 연설하는 해리스. REUTERS |
허리케인이 당신의 집을 향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당신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 스마트폰으로 허리케인 경고 메시지가 온 것도 없다. 정부 당국은 허리케인이 언제 얼마나 강해질지 등과 관련해 당신이 거주하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안전 및 대피 정보를 일절 제공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사는 국가에는 국민을 위한 정부의 독립적인 기상예보 서비스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이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이런 시나리오가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 공화당 우파 전략가들의 ‘프로젝트 2025’(트럼프가 2024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미국 연방정부를 재편하기 위해 보수주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내놓은 계획안)에 따르면,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해체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국립해양대기청의 기존 기상예측 업무는 민간 부문으로 넘어가고, 미국에서 기후변화 조사 업무는 아예 사라지게 된다. 가히 트럼프다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는 달리 프래킹 금지에 찬성한다. 미국 석유업체 셰브론이 2019년 8월 텍사스 미들랜드 근처에서 프래킹 작업을 하고 있다. REUTERS |
해리스 당선되면 달라질까
트럼프는 이미 첫 재임 동안 대기청 예산 삭감을 시도했다. 당시 트럼프는 국립환경보호청의 예산도 삭감하고 권한도 축소했다. 심지어 32년 역사의 수자원 보존 규정을 완화했고, ‘자신의 아름답고 숱이 많은 머리를 더 잘 감기 위해’ 샤워기 수압을 강화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미국은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독일의 무려 7배인 60억 톤(t)에 달하며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다. 그렇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기후정책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또한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될 경우 세상은 정말 달라질까?
대니얼 캐먼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에너지학 교수에 따르면, 두 대선 후보의 기후정책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와 관련해 이미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고 캐먼 교수는 <차이트> 취재진과의 화상 통화에서 말했다. 그러면서 청정 기술을 지원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인프라투자·일자리법(IIJA) 및 미국 내 소외되고 환경오염으로 고통받는 빈곤한 지역사회에 프로그램의 기금 중 40%를 지원하는 ‘저스티스 40’(Justice 40) 이니셔티브 등을 대표적 성과로 꼽았다.
캐먼 교수는 화상회의에서 정치인들처럼 열변을 토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과학조정관을 역임했던 그는 2017년 트럼프가 집권하자 항의 차원에서 과학조정관을 사임했다. “당시 트럼프는 기존 기후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기후정책 폐지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2기 행정부의 기후정책은 더욱 파괴적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IRA 기금에서 아직 지출되지 않은 자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것이고,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에서도 다시 탈퇴할 것이다.”
캐먼 교수에 따르면, 트럼프 재집권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위협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기후정책은 민주당의 기후정책과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유엔의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를 설계했던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이에 의구심을 내비쳤다. 삭스 교수는 싱가포르에서 “민주당에 큰 기대를 걸지 말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차이트> 취재진에 보내왔다. 거대 양당 모두 석유·가스업계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친환경 업계도 거대 양당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의 대선을 지원하자, 트럼프조차 전기차를 아주 긍정적으로 언급했을 정도다.”
하지만 삭스 교수는 “공화당에 대해서는 더더욱 기대하지 마시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실제로 공화당은 IRA를 무력화할 수 있으며, 석유·가스업계는 트럼프의 공공부지에서의 시추 권한 확대와 신규 석유 파이프라인의 지원 강화를 기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삭스 교수는 우려했다.
그렇다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기후정책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텍사스나 오클라호마 등 친공화당 연방주들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해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속도가 느려질 뿐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렇다 해도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들어설 경우, 대도시에 풍력과 태양에너지를 공급하는 전국적이고 국가적인 친환경 전력망 계획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미국 뉴욕의 사립대 더뉴스쿨에서 강의하는 제너비브 귄터는 공화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트럼프가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너비브 귄터 누리집 |
화석연료 소비 경감이 핵심
시스템 전체가 오류를 일으키는 상황에서 삭스 교수에게 이런 것들은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강성 공화당 성향의 연방주들은 석유·가스 채굴 허가를 더 많이 내달라고 백악관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삭스 교수는 화석연료의 채굴 및 소비량 경감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전세계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면서, 세계 최대 석유·가스 생산국이기도 하다. 두 가지 측면, 즉 온실가스 배출과 석유·가스 생산에서 모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지구온난화를 막는 건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바이든은 재선 출마를 철회하는 성명에서 IRA를 “역사상 최대 기후보호법”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적어도 공공토지에서의 신규 프래킹(셰일가스 채굴 공법인 수압파쇄)을 중단하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바이든 재임 동안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많았고, 석유·가스업체들은 트럼프 시절보다 채굴 허가를 훨씬 더 많이 받았다. 또한 바이든은 알래스카 국립석유보호구역에서 석유 시추를 진행하는 ‘윌로우 프로젝트’를 승인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석유·가스 채굴량을 늘릴 여지가 많다는 것을 트럼프는 알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주요 에너지기업 총수들과의 만찬에서 대선캠프에 10억달러(약 1조3400억원)를 기부하면, 전반적인 환경·기후 규제를 철회하겠다고 말했다. 만찬 참석자들이 <워싱턴포스트>에 이 사실을 알렸고 기사화됐다.
기후정책에서 관건은 해리스 대선 후보가 ‘환경파괴적 정책의 경쟁적 제시’라는 굴레를 깰 수 있는가다. 그리고 이는 아예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바이든과는 달리 해리스는 프래킹 금지에 찬성한다. 또한 탄소세 도입을 촉구하는 해리스는 열펌프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가 2019년 대선에 출마 준비를 할 당시의 기후정책 공약은 바이든보다 더 친환경적이었다. 그는 민주당 진보 계열과 함께 ‘그린 뉴딜’에 찬성하며, 2045년까지 미국 경제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극복하고 기후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최대 10조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해리스는 이전에도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친환경 정책을 실천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찰청 검사 시절 환경정의부서를 만들어 특히 빈곤 지역의 가난한 주민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환경범죄를 다루기도 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시절 그는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해 대중을 오도한 혐의로 엑손모빌을 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소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대신 독일 자동차업체들은 해리스의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친다. 해리스가 주정부 원고 중 한 명이었던 ‘디젤차 스캔들’ 소송에서 폴크스바겐은 약 150억달러(약 20조원)를 배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2023년 세계기후회의에서 그는 미국 부통령으로서 2030년까지 미국의 에너지 효율을 2배로 늘리고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늘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시에라클럽 등 미국 환경단체들은 해리스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해리스를 둘러싼 열광적 분위기와 별개로, 천연가스 생산 중심지이자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프래킹 금지는 선전포고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미시간주에서는 전기차를 ‘일자리 킬러’로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트럼프는 자동차 제조업체에 ‘피바다’를 경고하는 등, 전기차로의 전환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을 최대한 부추긴다. 해리스는 어떻게 하면 진보적인 기후정책 공약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이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석유·가스산업과 두 화석연료 산업에 대항해 성공적으로 싸우는 방법이 서술된 책이 2024년 7월 초 미국에서 출간됐다. 저자는 미국 뉴욕의 사립대 더뉴스쿨(The New School)에서 강의하는 작가 겸 활동가 제너비브 귄터다. 신작 출간 2주 후, 귄터는 뉴욕 사무실에서 <차이트> 취재진과의 화상 회의를 통해 조심스레 미래를 내다봤다.
“트럼프,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것”
그는 공화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트럼프가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시에, 해리스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해리스 부통령은 매우 고무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는 미국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돼 있다. 나는 해리스가 미국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해리스의 낙관적인 기후정책은 동영상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그는 공개 석상에서 기후 관련 질문을 받을 때면 단순히 생태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항상 사회 및 경제적 측면과 결부시켜 답한다. 그는 전기버스를 이야기할 때면, 전기버스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빈곤층 학생의 등하교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한다. 대기오염 대책을 이야기할 때면, 전기버스가 빈곤 지역 어린이를 천식에서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해리스가 기후문제를 평등 문제와 연결하는 것을 단순히 정치공학적 차원에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귄터는 말했다. 해리스는 기후와 평등 문제 모두 진지하게 접근하며, 기후전환이 극좌파의 어젠다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기후정책은 고통받는 사람의 삶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환경보호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공직에 나갈 수 있다.”
귄터는 해리스의 대선 승리를 믿는다. “흑인이 대거 투표장에 간다면 해리스가 승리할 것이다. 해리스가 아이들의 천식 예방 및 치료 공약을 내건다면 흑인 투표율이 올라갈 것이다.” 실제로 비백인 미국인이 특히 환경문제에 예민하다. 예일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라틴계 미국인의 64%와 흑인 미국인의 61%가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반면, 백인 미국인은 불과 50%만이 지구온난화를 걱정한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흑인 유권자는 환경 문제를 평균 이상으로 걱정할 뿐만 아니라, 역시 평균 이상으로 기후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의향이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설득이 관건
아스펜연구소가 2023년 주최한 기후 대담 관련 유튜브 영상에서 여성 사회자 옆에 앉은 해리스는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멋지다!”를 연신 외친다. 그는 기후보호가 경제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기쁜 어조로 말한다. “나는 기후보호를 생각할 때 일자리 창출과 생산, 특히 미국에서의 생산을 염두에 둔다.” 해리스의 이런 발언은 친환경 관점보다 경제적 관점이 우선시되는 곳에서 항상 긍정적 반응을 얻는다. 궁극적으로 그가 국가적 기후 전환을 달성하려면 다양한 그룹에 다가가야 한다. “우리는 기후문제를 다민족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로 만들어야 한다”고 귄터는 말했다.
서로 상이하지만 모순되지 않는 설득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기후정책을 자신의 사안으로 느끼게 해야 기후정책의 미래가 있다. 이에 성공해야만 대선 후보 해리스와 기후 자체에도 미래가 있을 수 있다.
ⓒ Die Zeit 2024년 제33호
Kippt da was?
번역 김태영 위원
하이케 부흐터 economyins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