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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에서 펀드투자자 실리콘밸리 전설로 우뚝

기사승인 [113호] 201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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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OPLE] 백스테이지캐피털 알런 해밀턴- ① 인생

알런 해밀턴은 지금 어엿한 투자자로 우뚝 섰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숙인이었다. 이 여성이 투자하는 대상은 젊은 창업자다. 그와 마찬가지로 흑인·여성·동성애자라는 조건 때문에 차별받는 이들, 그가 돕지 않으면 기술산업 분야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원한다.
 
기도 밍겔스 Guido Mingels <슈피겔> 기자
 
   
▲ 백스테이지캐피털 설립자인 알런 해밀턴은 노숙인 출신에서 투자자로 우뚝 선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흑인·여성·성소수자 등 기술산업 분야에서 외면받는 창업자들에게 자금을 투자함으로써 이들에게 ‘제2의 저커버그’가 될 기회를 제공한다. REUTERS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중심 선셋대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고층 건물 18층에 오르기까지, 알런 해밀턴은 먼 길을 돌아왔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자신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아랫동네를 거처 없는 노숙인 시선에서 바라봐야 했다. “밤새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낮이 되면 어디든 안전한 구석을 찾아가 눈을 붙이곤 했다”고 한다. “밤에는 위험하기에 깬 상태에서 계속 걸어다닐 수밖에 없다”며 “아무도 노숙인이 왜 낮에 잠을 자는지 알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38살 해밀턴은, 말 그대로 ‘무’에서 시작해 첨단기술 분야 신흥기업을 위한 모험자본 펀드라는 ‘유’를 만들어냈다. 디지털산업 콘퍼런스 무대에서 그는 널리 알려진 스타다. 경제 전문지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는 해밀턴 얼굴을 표지 사진으로 싣고, 그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기사로 써서 헤드라인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해밀턴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 분류하는 여러 요건을 종합적으로 갖췄다. 검은 피부, 여성, 동성애자다. 공교롭게 그는 이 조건에서 앞으로 자신이 이뤄내야 할 사명을 도출해냈다. 자신이 설립한 백스테이지캐피털(Backstage Capital)을 활용해 흑인·여성·동성애자라는 세 요건 중 어느 하나가 있는 젊은 창업자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해밀턴은 기술산업 세계에서 전혀 찾을 수 없는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는 실리콘밸리의 불편한 양심이 의인화한 모습이라고 일컫는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억달러가 오가는 이 디지털 모노폴리 게임에 흑인, 더구나 흑인 여성은 보통 참여할 수 없게끔 돼 있다. 샌프란시스코부터 새너제이까지 이어진 광활한 캘리포니아, 즉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소수자 출신 젊은 기업가 두뇌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전세계에 혁신을 일으키는 사례가 흔치 않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벤처투자(모험자본) 제공자와 투자자가 오로지 성공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기업만을 찾아내 수백만~수십억달러를 투자하는 데 골몰하기 때문이다. 
 
창업 세계는 창업 자본, 바로 종잣돈(Seed Money)에서 생명이 번성한다. 종잣돈을 풍족히 뿌리는 막강한 투자펀드 덕분에 실리콘밸리 경제 시스템은 어떤 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성장했고, 지금도 성장 중이다. 
 
다양성 같은 건, 실리콘밸리에서 아무 역할도 못한다. 성평등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회사 직원 화장실 문에 붙은 사용자 표기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규칙은 완전히 상실된 세계”라고 해밀턴이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이 모험자본 제공자가 될 수 있었다는 데서도 그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해밀턴이 실리콘밸리 분위기를 설명할 때 즐겨 인용하는 몇 가지 숫자를 보면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 정황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미국 기술산업 전체 종사자 가운데 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68.5%다.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은 겨우 7.4%다. 실리콘밸리 거대 기업이 자리잡은 샌프란시스코 주변 해안 지역만 따로 떼어 보면 흑인 비율은 3%에 불과하다. 경영진 분포는 한층 더 일방적인 모습을 띤다. 미국 첨단기술계 실무진 중 83%가 백인이고, 흑인은 겨우 50명 중 한 명, 즉 1.9%에 지나지 않는다. 사장급 인사 가운데 흑인 여성은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험자본 분배율을 자세히 보면 관련 수치는 최저 검출한계(Detection Limit) 근처에서 맴돈다. 사장직급 여성 비율이 2% 남짓인데 그중 흑인 여성 비율은 0.2%를 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밀턴 같은 사람이 어떻게 실리콘밸리 투자자의 배타적 클럽에서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떤 방법으로 팰로앨토의 유명한 샌드힐로드에 있는 거대한 빌딩 사무실에 입주할 기회를 잡았을까.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이 건물 안에는 세쿼이아캐피털, 클라이너퍼킨스, 앤드리슨호로위츠, 그레이록파트너스, 코슬라벤처스 같은 막강한 투자자가 모두 입주해 있다.  
 
몇 년 전, 해밀턴은 대학 졸업장도 없이 텍사스를 떠나 서부 해안에 정착했다. 돈도,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무슨 기회가 생길 리 만무했다. 몇 달 동안 그는 샌프란시스코 공항 바닥에서 밤을 보냈다. 낮에는 투자자를 쫓아다니며 자신에게 투자해보라고 설득하곤 했다. 직접 뒤를 쫓아가거나 통화를 시도했다. 투자금을 받으면 그것을 흑인, 또는 다른 조건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한 창업자에게 다시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설명했다. 
 
이즈음 해밀턴은 분노에 찬 심정을 익살스럽게 블로그에 글로 올려 많은 주목을 받았다. 블로그에서 상대자에게 직접 “친애하는 백인 모험투자자 여러분”이라는 문구로 시작해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여기에 의자를 가져와 자리잡고 앉으시라고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제가 다른 행성에서 온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는 가정하에, 이제 제 이야기에 한번 귀 기울여주세요. (중략) 제게 연락하세요. 지금 여러분께는 제2의 저커버그, 다시 말해 흑인 저커버그를 발견하게끔 돕는 안내자가 필요해요. (중략) 그 안내자는 유색인이어야만 해요. 흑인 친구 두세 명이 있고 취미가 농구인 백인한테는 그런 안내를 받을 수 없어요. (중략) 정말 진지하게 하는 말이에요. 제게 전자우편을 보내세요. ARLAN Hamilton@gmail.com에게 말이죠. (중략) 저를 여러분 사무실로 초대하세요. 볼링을 함께 치자거나 스시를 함께 먹자고 해도 좋아요. 그러면서 이 주제에 대해 우리 함께 이야기해봐요.”

   
▲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내는 여성 노숙인. 미국 국민의 10%가 빈민층인데, 그들 절반이 성인이 된 뒤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REUTERS
백인 위주 첨단기술계에 반기
해밀턴이 투자자가 되기 위해 독학하던 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7년 전, 나는 모험자본 제공자가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다. 무작정 반스앤드노블서점 경영서적 칸에 자리잡고 앉아 책을 읽었다.” 너무 비싸 책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유튜브를 통해 실리콘밸리에서 돈과 권력을 소유한 이들이 구사하는 수법과 투자 전략을 공부했다. 크리스 사카, 샘 앨트먼, 브래드 펠드, 피터 틸 등의 비디오를 수백 시간 봤다. “내가 얻은 결론은, 무엇보다 그들이 가진 것 중 내가 배울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는 확신이었다. 관건은 남을 설득하는 힘, 카리스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본주의자에게 도덕을 얘기하며 다가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았던 해밀턴은, 자신이 말하려는 내용을 윤리 수업이 아니라 사업 아이디어로 포장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모든 사람에게 “모험자본 90%는 백인에게 간다. 하지만 쓸 만한 아이디어 90% 모두가 백인에게 나올 수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백인에게 투자하는 사람은 다른 가치 있는 투자 기회를 간과하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한창 유행하던 때, 해밀턴은 “흑인이 새 비트코인이다”는 슬로건을 사람들 머리에 각인시켰다. 그가 원하는 건 선의의 목적을 위한 적선이 아니었다. 사업을 하고 싶었다. 몇 달이 지나고서야 해밀턴은 첫 번째 수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2만5천달러짜리 수표였다. 수전 킴벌린이라는 이름의, 돈과 영향력이 있는 여성한테 투자받았다. 이 일을 시작으로 새로운 기회의 문이 하나둘 열렸다. 
 
그때보다 1천만달러를 더 모은 지금, 백스테이지캐피털 서류철에 나온 기업 수는 100곳이 넘는다. 소품·생필품 제조업체는 물론 서비스, 경영분석, 라이프스타일 등 기업 업종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그중 하나인 카이로스(Kairos)는 얼굴인식 소프트웨어를 생산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 분야의 언차티드파워(Uncharted Power)도 있다. 자이로보틱스(Zyrobotics)는 디지털 학습게임을 만든다. 에어포더블(Airfordable) 앱을 보유한 고객은 항공권을 할부로 살 수 있다. 어떤 회사는 해밀턴 자신이 낸 아이디어라고 해도 믿을 만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블렌도어(Blendoor)는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때 무의식적 편견에 지배받지 않도록 돕는 블라인드 채용 앱을 개발했다. 
 
* 2019년 9월호 종이잡지 39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9년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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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장현숙 위원
 
 

기도 밍겔스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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