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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은 사후적인 미래의 전통

기사승인 [167호] 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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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박미나의 회화가 던진 화두

 
이승현 미술사학자
 

   
▲ 박미나 작가의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전시 전경(2023년 7월28일~10월8일, 서울 강남구 아뜰리에 에르메스). 에르메스재단 누리집(김상태 촬영)


전통은 잘 보존하고 가꿔야 할 소중한 우리 자산임이 틀림없지만 지금 여기의 상상과 창의를 가두는 강박이 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요즘 한국 드라마가 한국적인가,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한국적이라 할 수 있는가 하고 묻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과거지향적 한국성에 대한 집착은 선진을 맹목적으로 배우고 좇으며 후진의 설움과 망가진 자존감을 과거의 영광, 즉 전통으로 달랬던 우리 역사의 관성이 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변화된 위상을 정확히 인식한다면 굳이 묻지 않을 질문이다. 그런데 동시대 한국 미술의 경우 사정이 조금 다르다.
앞선 서구 문물의 힘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나라의 주권을 빼앗고,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치르고 기어이 서로를 원수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우리에게 선진을 배워 따라잡는 일은 순진한 바람이 아니라 사무친 숙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선 서구 사조를 배우고 도입하는 것은 한국 미술을 선진화하는 일이었다. 그 선진 양식 위에 우리 색을 덧입혀 한국적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이 선진국이 되기까지 우리 미술의 발전 전략이자 과정이었다. 이는 해방 이후뿐 아니라 최근 서구가 주목하는 1970년대의 단색화와 실험미술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식으로 작업할 때, ‘한국성’은 서구의 모방이 아닌 예술작품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어차피 양식은 선진을 가져온 것이니 작품의 독창성, 즉 예술성을 결정하는 것은 서구와의 차이인 한국성이 된다. 그런데 선배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우리는 1996년 ‘선진국 모임’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고, 선진에 대한 열등의식과 추격 의지도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바야흐로 과거의 영광에 기대지 않고 선진과 동등하게 경쟁이 가능한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서구의 소수자 정체성 포용
공교롭게도 바로 그 무렵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고 동구권 몰락으로 지구촌이 하나로 통합됐다. 서구는 그동안 아무 관심도 두지 않고 비중도 없던 비서구, 유색인종, 여성 등 다양한 소수성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들을 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구 주류 미술계의 이런 포용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각자가 속한 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우선적으로 선별됐다.
이 시기에 여성, 특히 아시아 여성성을 드러낸 이불, 한국의 오랜 군사독재 치하를 소재로 작업했던 서도호, 보자기 등을 소재로 한 김수자의 작품 등 한국적·아시아적·여성적 정체성이 두드러진 작가들이 먼저 세계 미술계의 부름을 받았다. 우리는 이제 비로소 지역색을 떨치고 동등하게 겨루자는데, 그들과 동등하게 겨루기 위한 경기장에 입장하기 위한 조건은 다시 지역적 정체성이었다.
또한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이 시기에 많은 젊은 작가들이 서구로 공부하러 떠났다. 그때 서구에서 만난 진보적인 교수들은 이들을 포용하면서 아시아적인 것, 한국적인 것, 여성적인 것 등 소수자 정체성을 강조했다. 막상 우리는 그들과 동등하게 형식과 내용을 다툴 준비가 됐는데 이른바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서구인들이 이들을 포용한 것은 그들과 동등한 주체로서가 아니라 소수자로서였다. 그래서 “당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한다”는 다문화주의적 포용은 의도치 않게 또 다른 차별로 기능한다.
실제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작가 박미나는 주변 백인들의 이런 시선에 “나는 서구화된 핵가족 시스템에서 태어난 아스팔트 키즈이고, 아파트에서 스팸이나 먹으며 <세서미 스트리트> <슈퍼맨> 등을 보면 자란 사람”이라고 강변해야 했다. 당시 정체성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며 회화를 새롭게 정의하고자 했던 박미나는 결국 그들의 경기장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구 주류 미술계의 승인을 얻지 못한 그의 새로운 실험은 우리 자신에게도 제대로 된 이해와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도대체 어디가 한국적인 거야”라는 의심 어린 물음을 여전히 받고 있다.
사실상 박미나는 한국 미술사에서 1990년 이후 등장한 전혀 다른 배경의 작가군에 속한다. 단색화가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이른바 ‘혼성모방’이라는 우리 나름의 해석으로 한국화한 모더니즘이었다면, 박미나를 비롯한 새로운 세대는 서구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사 수업을 들으며 서구 미술의 역사를 학습했다. 게다가 동시대 비평 담론까지 숙지한 상태에서 동시대에 맞는 내용과 형식, 말하자면 새로운 사조를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와의 단락이 가지는 미술사적 의의를 조명하고 평가하는 시도는 미흡한 실정이다.

정수진의 독창적 회화이론
박미나의 회화는 평면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원칙에 충실하지만 레디메이드 색상과 도상을 차용하는 포스트모던의 방법론을 취한다. 서사와 의미를 배제한 추상회화이지만 구상적인 이미지가 등장하고, 화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지만 그 시대 그 지역에서 가용한 색상과 이미지를 수집해서 다큐멘트하는 리얼리즘이기도 하다. 도상과 색상을 선택하는 방식은 기계적 논리에 따르면서도 이를 배치하고 구성하는 것은 작가가 결정한다.
이처럼 박미나의 작업은 기존 미술 사조를 횡단하고 위반하는 전혀 새로운 발명이라 서구 미술사에서는 자리를 특정할 수 없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공부했던 정수진은 회화를 형상 중심의 언어체계로 이해하며 기존 미술사에 없는 부도이론이라는 독창적인 회화이론을 새로 만들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 세대 우리 작가들의 회화에 대한 갱신된 물음을 역사화하는 작업은 우리 스스로 해야만 한다.
한국의 반도체나 자동차는 한국적이어서 세계적인 것이 아니고, 동시대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도 한국의 지역색과 전통에 기대어서 세계적인 것이 아니다. 반도체와 정보기술(IT) 강국, 케이팝이 그렇듯이 그렇게 세계화된 우리 것은 한국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한국의 새 전통으로 자리를 잡는다. 굳이 말하자면 이들의 한국성은 사후적으로 부여되는 미래의 전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성능 비교로 평가되는 기술이나 대중의 선호로 평가되는 드라마·가요와 달리, 미술은 소수의 전문가가 평가한다. 그래서 이들 작업에 한국성을 부여하고 미래의 전통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 미술사가와 이론가의 숙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4년 3월호

 

이승현 shl219@hanmail.net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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