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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산업생태계 만들어야

기사승인 [113호] 201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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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한-일 경제전쟁- ② 대응 방안

장지상 산업연구원 원장
 
   
▲ 2019년 8월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일본 수출규제 대응 당·정·청 상황점검 및 대책위원회 1차 회의’에서 정세균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아베 정부의 대일 수출규제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불러올 경제 파장은 만만치 않다. 일본도 바로 이 대목을 노린 것이다. 실제 일본의 수출관리 대상 전략물자에는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 다수 포함됐고, 일본이 이를 개별수출허가 품목으로 지정할 경우 반도체·디스플레이·일반기계 등 한국의 주력산업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8월2일 종합대응계획에 이어 8월5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한 것도 이런 인식에서 비롯했다. 일본이 8월7일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신청 30일 만에 허가했고, 각의 결정을 고시하면서 개별수출허가 품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는 등 애초 예상과 약간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일본이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수도꼭지를 잠글 수 있는 등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에, 이미 우리는 발표한 대책을 흔들림 없이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 대책, 지속적 추진이 중요
정부는 업종별 설명회 개최, 수출규제 애로신고센터와 소재·부품수급 대응지원센터 개설 등을 통해 수출규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기업체 애로를 접수, 해결하는 지원 체계를 만들었다. 나아가 주요 품목 물량 확보, 신규 대체 수입처 확보, 공장 신·증설, 포괄허가 활용이 가능한 일본의 자율준수(CP) 기업 활용 등을 지원해 단기적으로 공급을 안정시키는 긴급 대응책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8월5일에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주요 품목 공급 안정화,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확보를 통한 자립화, 강력한 추진 체제 구축을 통한 전 방위 지원 등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업계와 전문가 검토를 거쳐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개 분야에서 100개 핵심 품목을 선정하고 이 가운데 안보상 수급 위험이 크거나 주력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 전략적 중요성이 큰 20개 품목은 1년 안에, 나머지 80개 품목은 5년 안에 공급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
 
다음으로 소재·부품·장비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 방안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보자. 첫째, 수요·공급 및 수요기업 사이 건강한 협력모델 만들기를 지원한다. 둘째, 기업 맞춤형 실증·양산 테스트베드를 확충한다. 셋째, 입지·환경 규제 완화, 대규모 투자펀드 조성, 특화 전문 인력 양성과 공급 등 민간 생산과 투자를 전방위적으로 지원한다. 넷째, 글로벌 수준의 소재·부품·장비 전문 기업을 육성한다. 
 
마지막으로, 원활한 정책 추진을 위해 소재·부품수급 대응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기업 애로를 원스톱으로 해소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경제부총리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각각 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하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도 신설한다. 이 위원회는 소재·부품·장비별 대·중소기업 대표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실무추진단을 꾸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모델 시행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나아가 2021년 일몰 예정이던 현행 소재·부품전문기업특별법을 상시법인 소재·부품·장비산업육성특별법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단기적 공급 안정화뿐 아니라 중·장기적 경쟁력 제고까지 염두에 두면서 모든 방안을 촘촘히 망라한 종합대책이라 할 수 있다. 이대로만 되면 수출규제에 따른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나아가 한국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속적인 추진이다. 특히 소재는 원천기술과 직결돼 단기간에 개발하고 상용화해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최소 10년 이상 시간을 두고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소재 강국인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신소재 개발과 제품화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2012년 물질도서관과 가상물리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 등 계산재료과학 인프라를 구축해 신소재 개발과 제품화 기간을 5년 이내로 단축하는 물질게놈특별계획(Materials Genome Initiative)을 시작했고, 유럽연합과 일본도 유사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도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개발 기간 단축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 2019년 7월19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차세대 반도체 연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밸류체인 변화에 염두
산업정책 측면에서는 ‘글로벌 밸류체인’(GVC) 변화를 염두에 둔 접근도 필요하다. 그동안 세계화 과정에서 ‘일본은 소재와 부품, 한국은 중간재, 중국은 완제품에 특화’하는 동아시아 분업 체계가 정착했고, 이를 통해 세 나라 경제가 한 묶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일본의 수출규제는 국제거래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공급 사슬을 훼손하는 것으로, 그 파장은 단순한 생산 차질을 넘어 GVC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전쟁이 고조되는 가운데 강행한 일본의 이번 조처는 동아시아를 둘러싼 GVC를 가속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GVC에서 생산 부문은 중국에서 동남아로 바뀌고 있다. 또 보호무역주의로 생산국이 수입국으로 이전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는 GVC의 지리적 범위가 축소되는 것이다. 일본 수출규제는 국제거래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이런 변화를 더욱 촉진할 것이다.
 
한국은 국내시장이 협소해 소재·부품·장비도 어차피 세계시장을 상대로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변화할 한국의 주력산업을 둘러싼 GVC 향방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핵심 품목을 한 나라에 의존하는 것은 피해야겠지만 모든 것을 국산화하려는 것도 경제적 합리성이 없다. 무리한 국산화 추진은 가치사슬에서 비교우위가 없는 부문을 온존시켜 오히려 전체 산업생태계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 한국 주력산업의 GVC를 어떻게 끌고 갈지를 놓고 계획을 세우고, 여기에 맞는 방향으로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산업생태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역동성을 갖춘 산업생태계 조성도 필요하다. 수요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폐쇄적인 수직계열화는 한국 주력산업의 전형적인 생태계로서 이른 기간에 선진국을 따라잡는 데 주효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중소기업 혁신 역량을 훼손해 강건한 산업생태계 조성을 저해한 주요 요인이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책에서 제시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과 수평협력은 기존 폐쇄적 생태계를 탈피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대-중소 협력과 역동적 생태계 필요
그러나 협력만 강조하고 협력관계가 고착되는 위험성을 도외시하면 산업생태계 역동성을 보장할 수 없다. 산업생태계가 강건해지려면 혁신 기업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역동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요 대기업이 ‘혁신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국내외 기업에 개방해야 한다. 이 플랫폼을 통해 소재·부품·장비를 개발하는 전세계 혁신 기업이 생태계에 끊임없이 참여하도록 유도해 개방형 혁신을 이뤄내는 역동적인 산업생태계가 필요하다.
 
일본 수출규제가 아니더라도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2019년 6월 정부가 발표한 제조 르네상스 달성을 위해 반드시 육성해야 할 산업이다. 취약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를 통해 한국 주력산업 생태계를 강건하게 만들어야 명실상부한 제조업 강국 지위를 다질 수 있다. 그 답은 세계를 향해 열린 플랫폼 구축과 이를 통한 역동적인 산업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9월호
 

 

장지상 sjschang@knu.ac.kr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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