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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게임강국 독일 청소년 중독에 ‘갑론을박’

기사승인 [118호] 20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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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 컴퓨터게임은 질병?

 컴퓨터게임 위험성은 대체로 과소평가된다. 청소년은 게임회사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 더 빠르게 중독된다는 것이 문제다.

미하엘 프뢸링스도르프 Michael Fröhlingsdorf<슈피겔> 기자
 
   
▲ 독일에서는 청소년의 컴퓨터게임 중독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하는 어린이. REUTERS
아이는 한도 끝도 없이 부모를 졸라댔다. 결국 크리스마스이브에 새 태블릿컴퓨터를 손에 쥐자, 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3년 전 벤의 엄마는 앞으로 닥칠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엄마는 아들이 태블릿을 쓰는 걸 엄격하게 통제할 생각이었다. 엄마만 컴퓨터 잠금 해제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10살 벤이 태블릿을 사용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했다. 엄마는 이 방법으로 아들의 인터넷 사용 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현재 벤의 부모는 자신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깨달았다. 베를린 출신 고학력 부부인 이들은 뒤늦게 어떤 통제와 충고, 금지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간파했다. 엄마는 말했다. “정말 위험한 건 포르노 사이트가 아니다.” <포트나이트>(FORTNITE) 같은 컴퓨터게임이 더 위험했다. 아빠는 “아들이 서서히 게임에 중독됐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잠금 해제 코드를 입력하지 않고도 몰래 게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나아가 벤은 게스트 계정을 만들고, 부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밤에 게임하거나, 친구네 집에서 게임을 했다. 전자제품 쇼핑몰에서 게임하려고 결석까지 했다. 중고 휴대전화와 상품권을 사기 위해 몰래 돈을 훔치기도 했다. 
“마약중독자처럼 게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엄마는 말했다. 벤은 거짓말하고, 부모를 속이고, 도둑질을 했다. 벤 엄마가 플레이스테이션을 압수하려 하자 엄마를 위협했다. 심지어 벤은 자살하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아들이 어두운 시기를 겪었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많은 청소년에게 컴퓨터게임은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그들은 스스로 통제하지만, 일부는 중독자가 된다. 어떤 아이는 게임을 못 하게 하면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날뛴다. 베를린에서는 한 청소년이 플레이스테이션을 빼앗기자 망치를 들고 부모를 공격하기도 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는 한 10대 게임중독자가 인터넷을 하도록 부모가 허락해줄 때까지 밤새 젖먹이 여동생을 깨웠다. 함부르크에서는 15살 소년이 집 안 가구를 때려 부쉈다. 심리치료사들이 소개한 사례 중 일부다.
베를린병원 소아청소년정신의학과 과장인 야코프 플로라크는 “문제가 심각한 경우 부모가 경찰에 신고해 아이를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코프는 벤의 주치의다. 3개월 동안 치료받은 벤의 상태는 훨씬 나아졌다. 아빠는 “아들이 게임 중독을 극복하기까지 몇 년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 위해 수단과 방법 안 가려
2019년 11월 초 독일연방정부 약물위원회 소속 다니엘라 루드비히는 “독일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27만 명이 인터넷 관련 장애가 있다”고 경고했다. 인터넷 관련 장애 수치는 8년 만에 두 배로 증가했다. 12~17살 소녀 중 7.1%, 소년 중 4.5%가 이에 해당한다. 소녀에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소년에게는 게임이 문제다.  
중독 현상은 탄탄대로를 걷는 게임산업의 어두운 면이다. 독일 전체 청소년 중 약 4분의 3이 주기적으로 <포트나이트>, <피파>(FIFA), <마인크래프트>(MINECRAFT) 같은 게임을 한다. 
2019년 3월, 독일 어린이와 청소년 중독문제센터(DZSKJ)와 건강보험회사 DAK에서 발표한 포르사연구소(Forsa Institute)의 설문조사 결과다. 청소년들은 평균 하루 2시간 이상, 주말과 휴일에는 3시간 이상 게임을 한다. 라이너 토마지우스 DZSKJ 센터장은 “주기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 중 최소 6분의 1이 게임 속에서 했던 위험한 행동을 현실에서도 한다”고 말했다.
게임회사 사업모델은 중독 문제를 더욱 악화한다. 대부분 게임은 인터넷에서 무료로 제공되고,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사실상 끝없이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독 문제 연구자들은 이것을 게임 중독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본다. 술이나 담배와 마찬가지로 ‘중독 물질에 접근하기 쉬울수록, 중독자가 늘어난다’는 이치다. 
게임회사는 이용자가 게임하면서 돈을 쓰도록 유도한다. 일명 ‘인게임 구매’다. 게임 캐릭터를 위해 무기나 의상 같은 추가 장비를 사야 하는 식이다. 이용자가 캐릭터에 투자한 보람을 느끼려면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가상세계에 머물러야 한다. 게임 개발자가 이용자와 게임의 정서적 유대감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게임회사는 이용자가 게임을 계속하게 하려고 도박게임 전략과 속임수도 사용한다. 중독 전문가로 꾸린 미디어중독전문가협회에서는 “게임회사가 게임 시간뿐만 아니라 고객을 오래 옭아매는 방법을 점점 더 많이 연구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불규칙한 보상이 이뤄질 때, 원하는 행동이 뇌에 잘 각인된다. 이를 ‘간헐적인 강화’라고 하는데, 게임 개발자는 이를 종종 활용한다. 처음에는 이용자가 빠른 성공을 거둬 보상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지만, 점점 보상이 줄어들고 예측 불가능해지는 식이다. 이용자가 목표를 달성하면 새 임무가 주어진다. 오직 한 가지, 이용자가 게임을 계속하게 하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다.
주변에 게임을 즐기는 친구가 많을수록 유혹에 빠지기 쉽다. 오늘날 많은 게임이 온라인에서 팀 형태로 진행되기에 나도 함께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더 강하게 느낀다. 팀 플레이에서는 개인의 짧은 휴식조차 게임을 망치는 원인이 된다. 이용자들이 쉼없이 게임에 몰입하게 해 중독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인 셈이다.
인플루언서(소셜네트워크 유명인)도 게임 중독에 기여한다. 이들은 게임을 광고하고, 게임회사가 게임 커뮤니티를 만들며, 프로게이머가 참여하는 이(e)스포츠 이벤트를 지원한다. 
프로게이머 역시 게임 중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주기적으로 자신이 게임에 얼마나 중독돼 있는지 확인하는 이스포츠 선수들이 있다”고 클라우스 뵐프링 마인츠 게임중독앰뷸런스 정신의학과장은 말한다. 어떤 선수들은 휴식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 최근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끈 게임은 미국 게임회사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다. 전세계 2억 5천만여 명이 무료로 내려받았다. REUTERS
‘인게임 구매’ 시스템의 덫
최근 몇 개월간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끈 게임은 미국 게임회사 에픽게임즈(Epic Games)의 <포트나이트>다. 전세계 2억5천만여 명이 무료로 내려받았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 100명이 가상세계 섬에서 대결한다. 생존게임이지만 피는 흐르지 않는다. 화려한 색상과 만화 같은 캐릭터가 게임을 지배한다. 
<포트나이트>는 인게임 구매 시스템을 완비했다. 이용자는 캐릭터를 위한 장비와 의상뿐만 아니라 일정 기간 게임 플레이에 대한 추가 보상을 받는 배틀패스까지 산다. 이 회사는 한 달에 매출 3억달러(약 3478억원)를 올린 적도 있다. 
프랑스 출신 심리학자 셀리아 호든트는 이 성공 주역의 한 명이다. 그녀는 2년 전까지 에픽게임즈에서 ‘사용자경험부문’ 책임자였다. 2년 전 <게이머의 뇌>(The Gamer’s Brain)를 출간하기도 했다. 
호든트는 게임 개발에서 신경과학과 인지심리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용자가 게임에 만족하면 다시 게임을 찾는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가 어디서 게임을 중단하는지 알기 위해 이용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지점에서 프로세스를 변경하는 일이다.”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게임 개발자를 가르치는 호든트는 윤리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이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그녀에 따르면, 귀여운 게임 캐릭터가 “장비를 사주지 않는다”고 울기 시작하면 ‘선을 넘은 것’이다.
이런 호든트 발언은 에픽게임즈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진행된 에픽게임즈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인용됐다. 
2019년 10월 게임 중독인 10살, 15살 두 자녀의 부모가 <포트나이트> 개발자를 상대로 소송했다. 혐의는 다음과 같다. “게임회사 에픽게임즈는 처음부터 어린이를 가능한 최대치로 중독시키는 게임을 개발하려고 의도했지만 이 사실을 부모에게 경고하지 않았다.”
게임산업계에서 계속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지만, 대부분 중요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컴퓨터게임에 쉽게 빠지는 이들을 어떻게 보호하며, 게임에 중독된 이들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다. 2013년에야 미국 전문가들이 컴퓨터게임 중독 진단을 위한 기준을 제안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4년 동안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2019년 5월 게임사용장애(게임이용장애)를 공식 질병으로 지정했다.
독일에서는 관련 지침을 만들고 있다. 미디어중독전문가협회 소속 크리스티안 그로스는 “수요에 맞는 치료 시스템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부분 지역에 외래 및 입원 환자를 위한 치료 옵션이 없다. 인구밀집 지역에서도 중독치료 지원을 받기 힘들다. 
벤 엄마는 “여러 군데 전화를 걸고, 지인에게도 물어봤다”고 했다. 석 달 동안 기다린 끝에 아들이 베를린병원에서 치료받게 됐을 때 정말 기뻤다고 한다.  
 
   
▲ <포트나이트> 등의 게임은 이용자가 캐릭터를 위한 장비와 의상뿐만 아니라 소품을 사게 하는 방식으로 막대한 매출을 올린다. <마인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탈을 쓴 소년이 칼을 들고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가고있다. REUTERS
중독 조장 메커니즘 규제 목소리
많은 도시와 지역 공동체에서 외래 중독 상담소를 운영한다. 각 상담소는 미디어 중독자를 위한 시간도 마련해놓았다. 상담소는 대개 게임 중독을 걱정하는 부모와 자녀가 ‘치료 체계’에 접하는 출발 지점이다. 하지만 게임 중독 청소년을 돕는 상담사의 특수한 훈련이나 통일된 표준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양육 조언 이상 얻지 못하는 일도 빈번하다.  
게임 중독 연구자와 심리치료사는 국가가 중독을 조장하는 메커니즘을 금지하거나, 최소한으로 경고문 게시 의무화 규정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 중독연구협회는 “컴퓨터게임 등급을 분류할 때 중독 위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중독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게임은 16살 이상 이용 등급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 게임물등급분류기관(USK)은 2019년 여름 <포트나이트>를 12살 이용가로 분류했다. 12살부터 줄거리를 허구로 인식해 ‘거리낌 없이’ 게임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USK는 폭력적인 내용과 음란성을 기준으로 심의할 뿐 중독성 요소는 반영하지 않는다. 엘리자베트 제커 USK 의장은 “이제까지 연령 등급 심의 외에 중독성 요소 전반을 반영하는 유효한 기준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현 독일 컴퓨터게임협회장이자 USK 의장을 했던 펠릭스 팔크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컴퓨터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것은 성급했다”며 “급진적이지 않게,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게임 중독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로비스트가 된 팔크는 게임에 중독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이 내포됐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경고문은 쓸데없다”며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 시리즈물에 ‘주의! 당신은 이 시리즈를 하룻밤 사이에 전부 보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을 게시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독 전문가이자 WHO 자문에 참여한 뤼베커대학병원 정신과·심리치료 클리닉의 선임 심리학자 한스 위르겐 룸프는 팔크의 주장을 반박했다. 룸프는 “중독성 부정은 게임산업계 전략”이라며 “흡연 중독성을 부정했던 담배산업계를 연상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스스로 게임 시간 통제해야
게임 중독이 심각한 경우, 어린이와 청소년 중독문제센터가 아닌 함부르크 에펜도르프대학병원(UKE)에서 치료한다. 이 병원은 독일에서 유일하게 게임 중독 청소년을 위한 주간치료소를 운영한다. 또래보다 건장하고 성숙하게 보이는 15살 요나스는 이 치료소에서 석 달째 치료받는 환자 8명 가운데 한 명이다. 요나스는 “치료소에 다닌 뒤부터 큰 짐을 덜었다”고 말했다.
요나스는 과거 일주일에 70시간씩 게임을 했다. 방학 때는 100시간을 넘긴 적도 있다. 학교에서도 컴퓨터게임만 생각했다. 수업 중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 대부분은 수업을 방해하지 않으면 내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연히 요나스는 성적이 떨어졌고, 결석도 빈번했다.
결국 교대 근무자로 일하던 싱글맘인 엄마는 아들이 게임을 못하도록 WLAN 라우터(안테나 증폭기)를 들고 직장에 출근했다. “그때 나는 방문을 발로 차 구멍을 내고, 식탁에 칼을 꽂았다.”
라이너 토마지우스 DZSKJ 센터장은 “지속해서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 중독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컴퓨터게임 중독 뒤에는 대개 심리적 스트레스가 잇따른다. 게임은 실패와 두려움, 괴롭힘,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잊게 해주고 고독, 좌절, 외로움, 우울증을 상쇄해준다. 확실한 것은 게임 중독자가 현실보다 가상의 게임 세계를 더 편안하게 느낀다는 사실이다.  
“온라인 도피 대신 삶에 대한 욕망”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함부르크 에펜도르프 치료소는 현실을 일깨우고, 자신감을 키워주는 데 주안점을 둔다. 환자는 악기 다루는 법을 배우고 운동을 한다. 치료소 학교 교사는 청소년 환자의 학습 공백을 채울 수 있도록 돕는다. 
토마지우스는 “가장 중요한 건 청소년 스스로가 컴퓨터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게임을 완벽하게 끊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컴퓨터가 없는 삶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심리치료로 게임을 통제할 가능성은 강한 마약보다 훨씬 높다.” 실제 환자 5명 중 4명이 게임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치료소 안에서는 게임을 엄격하게 금지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모니터 앞에 앉아도 된다. 다만 게임한 시간을 공책에 적고, 스스로 다짐한 제약을 준수해야 한다. “지금은 일주일에 23.5시간만 게임한다. 허용된 시간보다 30분밖에 초과하지 않았다”고 요나스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 Der Spiegel 2020년 1호
Wie ein Heroin-Junkie
번역 황수경 위원

미하엘 프뢸링스도르프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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