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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병 앓는 할리우드 배급망

기사승인 [134호]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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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기획] 갈림길에 선 할리우드 ② 위기와 기회

라르스올라프 바이어 Lars-Olav Beier 로타어 고리스 Lothar Gorris
볼프강 회벨 Wolfgang Höbel 올리버 케버 Oliver Kaever
하나 필라르치크 Hannah Pilarczyk
<슈피겔> 기자

   
▲ 1929년 1회 시상식이 열린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매년 열렸다. 2021년 4월25일(현지시각)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한국의 윤여정 배우(오른쪽)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REUTERS


2021년 4월25일(현지시각) 일요일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1929년 1회 시상식이 열린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은 전쟁과 여러 위기, 천재지변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매년 열렸다. 올해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은 열려야 했다. 지난 1년간 역사상 최악의 위기인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끝없이 쏟아지는 부정적인 뉴스에 시달린 할리우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려야 했다. 사전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청중을 모아놓고 ‘실제’ 사람들이 ‘실제’ 무대에서 오스카상을 받는 모습을 연출해야 했다. 할리우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영화계 ‘올드 노멀’(Old Normal)로의 귀환을 보여주려 했다.

   
▲ 아카데미 10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촬영상과 미술상을 받은 넷플릭스 영화 <맹크>(Mank)를 비롯해 2021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영화 대부분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지역에서 영화관이 아닌 OTT로 관객을 찾았다. 촬영상 수상자인 에릭 메서슈밋이 트로피를 들고 있다. REUTERS

속속 문 여는 영화관들
백신 접종률이 높은 미국에서 관객 수는 여전히 제한됐지만 수많은 지역에서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3월 말 처음 첫 블록버스터가 영화관에서 상영됐고, 상영 첫 주말에 5천만달러(약 565억4500만원)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해당 영화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에 동시에 올라왔는데도 말이다. 영화 매체들은 이를 큰 성공으로 보도했다. 할리우드는 살아 있고, 영화관들도 살아 있으며, 어쩌면 머지않아 모든 것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리라고 전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전부터, 할리우드가 여전히 전세계 최대 스토리텔러이며 영화관은 영원히 신비로운 장소로 남을 것이라는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과 감사 인사로 채워질 듯했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영화계 부활 신호탄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장례식이 될 수도 있다. 후보에 오른 영화 대부분은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 지역에서 영화관이 아닌 OTT로 관객을 찾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카데미 수상작을 보았는지, 수상작과 후보작이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어떤 문화적 힘을 가졌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OTT에는 반향의 공간이 없다. 옛 할리우드는 수백만 관객이 함께하면서 거대한 공동 무대에 영화를 올려놓았다면, 새로운 할리우드는 알고리즘 거품 속에 꼭꼭 숨어 있다.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로 오르고 촬영상과 미술상을 받은 넷플릭스 영화 <맹크>(Mank)는 미국의 전기 영화다. <맹크>는 영화감독 오슨 웰스의 영화 <시민 케인>의 각본을 쓴 영화각본가 허먼 J. 맹키비츠의 일화를 다뤘다. 할리우드 황금기인 1940년대 영화 <시민 케인>은 역사상 유명한 영화 중 하나다. 1940년대는 무성영화가 떠난 자리를 유성영화가 차지하면서 각본가의 역할이 중요해지던 시기다.
오슨 웰스에게만 맞춘 초점을 돌려 맹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영화 <맹크>의 핵심이다. <시민 케인>의 진짜 제작자는 맹크라는 것을 드러내는 영화이기도 하다. 넷플릭스가 할리우드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1930년대 할리우드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리는 이야기로 하필 2021년 아카데미에서 상을 두 개나 받은 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침체기를 겪은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던 할리우드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 <맹크>에서 사람들을 다시 영화관으로 오게 하려는 처절한 노력을 담은 장면은 영화산업 관계자들에게는 뼈아픈 대목이다.
2020년 영화계의 모든 수치는 참담했다. 전세계 영화계 수입은 2019년 422억달러(약 47조7400억원)에서 120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영화관 수입은 미국에서 80%, 독일에서 약 70% 급감했다. 파산을 신청한 영화관이 속출했고 심지어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화관들도 문을 닫았다. 영화사들은 블록버스터 <원더우먼 1984> <블랙 위도우>나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의 개봉을 계획했다가 연기했다. 이들 영화는 각각 제작비로 최소 2억달러가 들어갔고 손익분기점이 최소 5억달러가 돼야 한다.
반면 OTT 구독자 수는 늘었다. 넷플릭스는 1억6700만 명에서 2억400만 명으로, 아마존프라임비디오는 1억5천만 명에서 2억 명으로 늘었고, 2019년 말에 오픈한 디즈니플러스(Disney+)는 2021년 3월 구독자 1억 명을 기록했다. 영화관이 문을 닫았다는 건 사람들이 더 이상 영화를 볼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의 5대 메이저 영화사 중 하나인 워너브러더스는 2021년 개봉 예정이던 영화를 모회사 워너미디어의 다른 자회사인 OTT 플랫폼 HBO맥스에서 스트리밍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는 “OTT 홍보 주간”과 다름없었다고 독일의 영화제작자 한스요아힘 플레베는 말한다. 플레베는 1990년대 독일에서 멀티플렉스 시네막스(Cinemaxx)를 세웠으며, 현재 베를린의 초팔라스트(Zoo Palast)를 비롯해 독일 10개 지역에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넷플릭스나 아마존프라임비디오를 구독하지 않은 사람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구독자가 됐다.” 플레베는 영화계가 대대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여 년 역사를 가진 영화계는 수많은 위기와 위협의 파도를 넘었다. 1920년대 말 세계경제 위기에 관객은 영화관에 가지 못했다. 1948년 미국 대법원은 대형 스튜디오 5곳(MGM, 파라마운트, RKO, 워너브러더스, 20세기폭스)에 대해 영화 제작과 배급, 상영을 수직적으로 통합한 것은 독점 금지법 위반이라고 판결해 대형 스튜디오의 손아귀에서 영화관을 다시 자유롭게 해줬다. 1950년대 텔레비전, 1960년대 비디오, 그리고 1990년대 DVD(디지털비디오디스크)가 차례로 나와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영화관의 특권에 도전장을 던졌다. 1970년대 청년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사회 현실을 다룬 영화가 대거 제작됐고, 대형 영화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화사들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할리우드는 항상 자본주의의 모범생이었다. 아주 유연하며 적응력이 뛰어난 할리우드는 탄탄한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제임스 본드의 스물다섯 번째 ‘007 시리즈’인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영화산업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애초 2020년 4월 개봉하려 했지만 여러 차례 연기하다 2021년 9월30일로 개봉이 예정됐다.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대니얼 크레이그가 2015년 독일 베를린에서 시사회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REUTERS

영화사 100년의 파도
그렇다면 할리우드는 지금 팬데믹 위기를 무사히 헤쳐나올 만큼 탄탄할까? 영화계 소식을 논쟁적으로 다루는 뉴스레터 <디 앵클러>(The Ankler)는 2020년 7월 할리우드 영화 관객 수가 역사상 기록을 경신했지만 붕괴 위험에 처한 현 할리우드 시스템은 미국의 축소판이라고 할리우드 상황을 요약했다.
구독자 모델을 기반으로 한 OTT가 부상하면서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들의 비교적 간단한 재정 모델은 불투명한 재정 모델로 대체되고 있다. 기존 할리우드의 재정 모델은 영화제작비가 X달러이고 다양한 배급망으로 수익 Y달러를 거두는 방식이다. 반면 OTT의 재정 모델에선 투자 대상에게 X를 투자하면 영화가 얼마큼 수익을 가져다줄지 논의가 필요하며, 차기 영화에 얼마나 투자할지는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마치 문화투쟁 실험처럼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예술가 영혼을 지닌 창의적인 영화계 인사들에게 몰려들었다. 젊은 디지털 세대는 오래전부터 유튜브에 영상물을 올리고 영화를 불법으로 내려받아 보고 있다. 이제는 중국과 한국의 글로벌 영화가 영화시장을 정복하고 있다. 할리우드는 ‘디지털 침략자’들로부터 수세에 몰린 형국이다.
할리우드 영화계 대표 인사들은 교체됐고, 할리우드 권력은 재분배됐다. 할리우드의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완전히 몰락했다.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은 할리우드의 영화 소재가 되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계 전반에서 인종차별주의 격파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이 3년 연속 사회자 없이 열린 것은 2019년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사회자로 내정됐던 코미디언 케빈 하트의 과거 성소수자 혐오 발언 사실이 드러나 그의 사회자 자격이 박탈됐기 때문이다.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자를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할리우드의 기존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정치·경제·문화·기술 측면에서 공격받고 있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할리우드를 덮쳤다. 이후 할리우드는 심장마비와 신경쇠약을 동시에 겪는 환자가 됐다고 <디 앵클러>는 적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할리우드가 과장 성향이 있는 수많은 멜로드라마적인 사람들을 끌어당긴다면서, 할리우드는 이제 방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고 보도했다. 할리우드가 절대적 암흑기로 접어들었다고 한 영화제작자의 말도 인용했다.
할리우드는 1919년 관객이 스페인 독감 대유행을 거치며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까 우려했다면, 이제는 관객이 팬데믹 동안 록다운(이동 제한)의 우울함을 벗어나기 위해 집에서 영화와 미니시리즈를 보면서 영화관에 가는 습관을 버릴까 두려워하고 있다.
시사를 알기 위해 신문을 읽어야 할까? 장을 보기 위해 매장에 가야 할까? 영상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야 할까?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수많은 사람이 종이매체를 구시대 유물로 여기는 것도 분명하다. 여전히 쇼핑몰이나 영화관에 가는 것이 정말 록음악 콘서트처럼 대체 불가능한 공동의 경험일까.
제프리 제이콥 에이브람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대표 제작자이자 영화감독이다. 그의 최신작 <스타워즈>는 전세계적으로 10억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영화관 수가 줄어들면 블록버스터 영화 역시 힘든 시기를 거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에이브람스는 그런 현실 진단을 단호히 거부한다. <뉴욕타임스>는 “1918년의 스페인 독감 종식이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로 이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고 에이브람스의 말을 인용했다. 인간에게는 사람을 만나려는 욕구가 있고 공동의 경험을 추구한다. “낯선 사람들과 영화관에 앉아 함께 웃고 우는 것보다 더 흥분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영화관은 교회와 비슷하다. 당연히 집에서 혼자 기도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과 집에서 홀로 기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고 에이브람스는 강조한다.

   
▲ 2020년 영화계의 모든 수치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전세계 영화계 수입은 2019년 422억달러(약 47조7400억 원)에서 120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영화관 수입은 미국에서 80%, 독일에서 약 70% 급감했다. 파산을 신청한 영화관이 속출했고,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화관들도 문을 닫았다. 할리우드의 한 영화 시사회에서 출연진과 관계자가 다 함께 축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REUTERS

거듭 개봉 연기한 ‘007 시리즈’
제임스 본드 최신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No Time To Die)는 할리우드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임스 본드는 할리우드의 ‘올드 이코노미’에서 여전히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브랜드다. 숀 코너리는 1962년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을 처음 연기한 배우다. 이후 제임스 본드 영화가 24편 제작됐다. 주연배우는 계속 달라졌지만,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할리우드에서 보기 힘든 지속성을 유지했다. 제임스 본드 영화는 영화관 상영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DVD, 블루레이 혹은 OTT를 거쳐 마지막엔 텔레비전에서 상영되는 배급 단계를 거쳤다. 영화계에선 이를 ‘배급 체인’이라고 한다. 영화 한 편이 다양한 배급망을 거치며 여러 차례 돈을 벌어들인다. 영화제작사에는 제작비 회수를 위해 절박하게 필요한 돈이기도 하다. 최신작 제임스 본드 영화 제작에는 2억5천만~3억달러가 들어갔다. 이외에 억 단위 돈이 홍보에 더 든다.
영국의 브로콜리 가문이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제작한 지 약 60년이 됐다. 수석프로듀서 바버라 브로콜리(60)가 현재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제임스 본드의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에게서 첩보소설 제임스 본드 시리즈 저작권을 사들였다.
그러나 25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는 시작 단계부터 문제가 터졌다. 바버라는 촬영 시작 직전 대니 보일 감독을 해고하고 대신 케리 후쿠나가 감독을 기용했다. 작가이자 영국 방송 <비비시>(BBC) 코미디 드라마 <플리백>(Fleabag)의 기획·각본·주연을 맡은 피비 월러브리지에게 새로운 각본 집필을 맡겼다. 미투 운동과 영화의 다양성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백인 남성 마초 영화인 제임스 본드 영화가 구시대 산물로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흑인 미국인 본드나 여성 본드 주연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제임스 본드는 원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시대 흐름에 역행해서도 안 됐다.
각본이 새로 집필되고 감독이 교체되면서 영화 개봉 일정이 2019년 11월에서 2020년 4월로 연기됐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영화 개봉 한 달 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세계에서 영화관들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바버라 브로콜리와 영화 제작에 참여한 제작사들은 영화 개봉을 2020년 4월에서 11월로 다시 연기했다. 하지만 이 개봉 일정도 지켜지지 못했다. 현재 개봉 예정일은 2021년 9월30일로 정해졌다.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대니얼 크레이그는 공식 발표에서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극장에서 안전하게 우리 작품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전세계적으로 극장들이 문을 닫고 있다. 전세계에서 동시에 영화를 공개하기에 좋은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영화를 개봉하고자 한다. 지금은 그러기에 적합한 시점이 아니다.”
미국과 영국 등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에선 연기된 개봉 일정이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중요한 유럽 시장은 9월에도 여전히 백신 접종률이 높지 않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 개봉이 연기될 때마다 관련 문제와 비용이 늘어난다. 개봉 때마다 새로 홍보해야 하고, 새로운 영화 트레일러(예고편)를 제작해서 공개해야 한다. 아직 영화 전편을 본 사람은 없지만, 개봉을 여러 차례 연기하는 과정에서 트레일러만 여러 편을 보면서 마치 모두가 영화 한 편을 다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는 단순한 스크린 영상을 뛰어넘어 피피엘(PPL·특정 기업의 협찬을 대가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해당 기업의 상품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소도구로 끼워넣는 광고기법)을 모아놓은 영상이기도 하다. 원래 장면에서 나오는 스마트폰, 운동화 혹은 하이테크 기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구모델이 돼버린다. 그래서 여러 차례 최신 모델로 동일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제임스 본드 영화 개봉은 유조선 진수에 비유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다 맞아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 최신작은 처음부터 되는 것이 없었다.
제임스 본드 제작사 엠지엠(MGM)은 2020년 가을 넷플릭스와 아마존 쪽에 제임스 본드 신작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트리밍 의향을 타진했다. MGM은 8억달러를 제시했고,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과도한 금액이라며 거절했다. 이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영화계에 역사적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수석프로듀서 바버라 브로콜리와 캐리 후쿠나가 감독은 영화관 상영으로 완전히 방향을 선회한 듯하다. 제임스 본드 최신작 개봉으로 영화관은 위대한 컴백을 경험할 것이라는 문구는 팬데믹 시기의 구호가 되었다. 제임스 본드 신작은 할리우드의 초대형 유조선이자 어쩌면 최후의 공룡일 것이다.
“제임스 본드는 블록버스터와 슈퍼히어로 영화가 사망할 경우 최후의 생존자가 될 수도 있다”고 독일 베를린의 영화제작자 슈테판 아른트는 말한다. “향후 남을 소수의 스크린에 2~3년마다 제임스 본드 영화가 상영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로지 과거 향수 때문에 영화관으로 향할 것이다.” 아른트는 이런 의미의 영화관은 과거의 유산에 불과하며, 그렇다고 과거가 더 나았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아른트는 독일의 대형 영화제작사 엑스필메(X-Filme)를 운영하고 있다. 아른트가 제작한 영화에는 <롤라 런> <굿바이, 레닌!> <하얀 리본> 등이 있다. <바빌론 베를린> 시리즈도 제작한 아른트에게 현재 영화계 상황이 불리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아른트는 “영화계가 1993년 영화 <사랑의 블랙홀>의 빌 머리처럼 순식간에 모든 것이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오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다”고 신랄하게 지적한다. “완전히 미친 짓이다. 세계는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다. 구시대 영화가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는지는 현대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지에 전적으로 달렸다.”

미래의 영화 돈줄은 무엇일까?
아른트는 자신의 제작사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제작한 십대들의 로맨틱 코미디물 <이지와 오시>(Isi & Ossi)에 대해 들려줬다. 아른트는 이 영화를 자그마하고 소소한 영화라고 표현한다. 그는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 상영됐다면 아마 30만 명 정도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넷플릭스에서는 첫 달에 2천만 명이 이 영화를 봤다. 남미에서만 1700만 명이 봤다. 그렇다면 미래의 화폐는 무엇일까? 영화관 관객 수는 단연코 아닐 것이다. 영화관 관객은 오래전에 끝난 이야기다. 영화관 관객 수는 오래전에 가치가 떨어졌지만 그냥 계속 이용해왔다.”

ⓒ Der Supigel 2021년 제17호
Filmriss
번역 김태영 위원

라르스올라프 바이어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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