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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가격지수는 마술을 부린다

기사승인 [145호] 20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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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이승현 미술사학자

   
▲ 2021년 10월2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한 호텔에 마련된 소더비즈 경매장에서 경매가 한창이다. REUTERS

오늘날 일반적으로 미술품을 투자자산으로 보는 시각은 2000년대부터 나타났다. 2001년 아트택틱(ArtTactic)이라는 미술시장 리서치 회사가 설립됐고, 아트택틱은 2005년 미술품 투자회사인 파인아트펀드가 출범하자 미술품이 본격적인 투자자산의 위상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2003년 미국 뉴욕대학 교수 메이 젠핑과 미술시장 전문가 마이클 모제스가 1875년 이후의 경매데이터를 근거로 산출한 ‘메이모제스 미술지수’(Mei Moses Fine Art Index)를 발표했고, 2016년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소더비즈가 이를 인수해 미술시장의 투자지표로서 발표하고 있다. 이쯤 되면 외견상으로는 미술품시장도 주식시장만큼이나 투자 여건이 조성된 듯이 보인다.

단기 미술품 펀드 우후죽순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트택틱은 여전히 시장보고서를 분주하게 내보내고 있지만, 아트펀드는 미술품에 투자하기에는 너무 짧은 단기운용 펀드만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파인아트펀드 정도만이 유지되고 있다. 미술품시장은 주식시장과는 달리 펀드나 지수를 사용하는 데 근본적으로 다른 걸림돌이 존재한다. 이에 통상 투자성과의 기준지표로 가장 널리 사용하는 객관적 통계의 결과물인 지수가 어떤 마술을 부리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수는 코스피(KOSPI) 지수처럼 시장의 시가총액을 그대로 지수화하거나, 전체 시가총액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는 주요 종목을 선별한 뒤 이들의 시가총액 크기에 따른 가중평균가격으로 산정된다. 주요 종목을 선별해 산정하는 경우 시장의 변화를 최대한 근사하게 복제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지수에 포함되는 종목을 변경해서 항상 시가총액이 높은 순위에 있는 종목들 위주로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현재 시점에 맞춰 업데이트되는 지수를 과거 투자성과의 지표로 사용할 때, 이 지수는 요술을 부린다.
예를 들어 과거의 시가총액 편입 종목을 그대로 투자해서 보유하고 있으면, 시장보다 성과가 저조해서 지수에서 퇴출당한 종목은 보유하면서 성과가 뛰어나 새롭게 편입된 종목은 포함되지 못한다. 과거의 한두 종목이 압도적인 성과를 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투자수익률은 자연스럽게 지수의 수익률에 못 미친다. 실제로 한국 주식시장의 지난 20년간 시가총액 순위 변화를 보면 2000년 10위 안에 있던 기업 중 2020년에도 10위 안에 남아 있는 기업은 단 2곳밖에 없으며, 지난 5년 이내에 새로 편입된 종목이 3곳이나 된다. 10위권 기준으로 20년 동안 80%가 퇴출당하고, 5년 안에 30%가 새로 편입한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은 전환기에 현재 지수와 과거 지수를 단순 비교해 성과를 측정하면, 그 성과는 퇴출당한 수많은 기업의 자리를 신규 업종의 성공으로 메우며 시장의 앞날을 장밋빛으로 물들인다.
역사가 무릇 승자의 기록이긴 하나, 특히 지수는 과거 투자의 실제 성과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승자의 성과로 패자의 성과를 대체하는 기록이다. 결과적으로 투자 실패는 모두 은닉되고 성과는 부풀려진다. 그나마 주식시장에는 지수 변화를 추적하는 지수펀드가 생겨서 이를 이용하면 지수의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미술품 가격지수의 경우는 어떨까?
주식의 경우 동일한 기업이면 모든 주식이 균질적인 것과 달리, 미술품은 동일 작가의 매 작품이 모두 상이하다. 따라서 메이와 모제스는 과거 경매에 두 번 이상 출품됐던 작품의 데이터로 지수를 산출했다. 경매시장에 두 번 이상 출품된 작품은 아무래도 시장에서 거래 비중이 높은 작가이므로 시장 동향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그러나 표본집단이 워낙 작고, 거래는 많이 되는데 동일 작품의 재판매 기록이 없어 누락되는 작가군, 그리고 인상파와 모더니즘 대가들처럼 시장에서의 비중이 상당한데도 매물이 없어 거래가 안 되는 경우 등 누락되는 비중이 너무 커서 그야말로 겨우 근사치만 보여줄 뿐이다.
실제 미술품은 특정 시점에 유통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작가 수가 매우 적고 시장에서의 퇴출과 신규 진입도 빈번하다. 그만큼 미술품 가격지수는 퇴출당한 수많은 실패를 성공한 소수의 성과로 가려서 위험은 함구한 채 기대성과를 부풀린다. 그리고 거래수수료가 미미한 주식시장과 달리 미술품시장에서의 거래수수료는 매수·매도를 할 때마다 각각 10%에서 많게는 20%에 이르는 높은 수수료를 내야 한다. 시장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교체매매를 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지수를 추적하는 미술품 펀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주식처럼 실패에 침묵
주가지수는 시장규모 변화를 보여주는 정확한 지표이지만 투자성과의 지표로 사용되는 순간 실적을 부풀리는 장난을 부린다. 그런데 미술품 가격지수는 시장규모 변화도 투자성과도 모두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주식 브로커가 하듯 미술투자를 권유하는 브로커는 미술품 가격지수로 마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과거 미술품시장의 투자성과를 보여준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미술품 가격지수가 발표된다. 미술품 경매회사, 시장분석회사, 펀드운영회사, 심지어 일부 갤러리까지 미술품을 투자자산이라고 홍보하는 모든 곳에서 지수가 필요하며 이 중 일부는 임의의 방식으로 지수를 발표한다. 주가지수가 과거의 투자실적을 얼마간 과대 포장하는 도구라면, 미술품 가격지수는 산정 방식에 따라 마술에 가까운 신기를 부린다. 무엇보다 지수는 주식이건 미술품이건 투자 실패에는 침묵한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5월호
 

이승현 shl219@hanmail.net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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